사망률 10%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초보 엄마는 한밤중에 30개월 된 아이가 심하게 열이 나고 보챘다. 단순히 감기라고 생각해 해열제를 먹이고 재웠다. 그런데 새벽까지 열은 내리지 않았고 오히려 팔·다리에 붉게 열꽃이 피었다. 걱정스런 마음에 오전 일찍 동네 병원을 찾았더니 상태가 심상치 않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결국 대학병원에서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으로 진단받았다. 담당 의사는 “조금만 늦었으면 피부 괴사로 이어져 팔·다리를 절단해야 할 뻔 했다”고 말했다.

치료 시기 놓치면 뇌손상·피부발진 후유증 심각

우리가 쉽게 놓칠 수 있는 치명적인 감염병이 있다.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이다. 초기 증상은 발열·두통·근육통 등 감기처럼 가볍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도 이런 증상이 나타난 지 불과 2~3일만에 사망할 수 있다.

살아남아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팔·다리를 절단하거나 뇌 손상·언어장애·시력손실 같은 장애가 평생 남는다. 인하대병원 교수는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미국·영국·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영유아 10대 사망 원인중 하나일 정도로 치명적인 감염병”이라고 말했다.

뇌수막염은 뇌와 척수를 안전하게 감싸는 막이 감염돼 발생한다. 원인은 크게 바이러스성과 세균성으로 나눈다. 전체 뇌수막염의 80%는 바이러스성이다. 감기처럼 앓고 지나간다. 일주일 정도 쉬면 일상 복귀가 가능하다.

문제는 세균성이다. 수막구균·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폐렴구균 같은 세균이 침투해 발병한다. 일단 발병하면 진행 속도가 빠르고 예측이 불가능하다.

치명적인 세균성 뇌수막염은 두 차례 위험시기가 있다. 첫번째는 생후 12개월 사이 영·유아기다. 실제 전체 세균성 뇌수막염 발병률의 절반은 5세 이하 영유아 시기에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소아감염병학회에서 1986년부터 2005년까지 20년동안 국내 소아청소년 수막염 발생 원인을 분석했다. 그 결과 신생아는 대장균·B형 연쇄구균이, 3개월 이상 소아는 수막구균·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폐구균이 중요 원인이었다.

강남성심병원 교수는“면역체계가 완성되지 않은데다 초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 약을 먹고 무심코 넘기기 쉽다”고 말했다. 특히 영·유아는 기운이 없거나 잠만 자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지거나 온 몸에 반점이 생겼을 때 뒤늦게 병원을 찾는다. 제 때 항생제 치료해도 성장판에 영향을 줘 성장불균형·학습장애를 겪을 수 있다.

“첫 증상이 나타는 후 10여 시간이 지나면 몸이 딱딱해지고 울긋불긋 발진이 생긴다”며 “이 때는 더 이상 손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수막구균 전염경로 컵·숟가락 공동사용 삼가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환자의 사망률은 10%다. 발병 하루나 이틀 내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3일 만에 사망할 수 있다. 콩팥·폐·심장 같은 장기가 도미노처럼 마비된다. 뇌출혈로 뇌기능이 망가지면 호흡이 약해진다. 신체 내 출혈로 혈액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팔·다리가 썩는다. 피부는 심한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벗겨진다.

청소년 시기도 주의한다. 외부 활동이 왕성한데다 학교에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수막구균이 빠르게 번진다. 그만큼 감염 위험도 높다.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감시연보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발생자 가운데 19세 이하 환자가 전체 발병자의 약 70%에 달한다. 미국에서는 수막구균 감염자의 3분의 1이 10대다. WHO에 따르면 세계인구 10명 중 1명은 코·목구멍 뒤에 수막구균을 갖고 있는 보균자다. 시간이 지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뇌수막염으로 악화된다.

가장 좋은 예방법은 백신접종이다. 증상만으로는 바이러스성·세균성을 구분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미국·영국·호주·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막구균 백신을 필수 예방접종으로 포함시켰다.집담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진수 교수는 “국내는 아직까지 수막구균 뇌수막염 백신 이해도가 부족해 개인이 별도로 접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균성 뇌수막염은 원인균에 따라 백신이 모두 다르다.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나 폐렴구균 백신은 영유아기에 예방접종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막구균성은 막지 못한다. 이진수 교수는 “별도의 백신을 맞아야 세균성 뇌수막염을 완벽하게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2012년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백신(멘비오)이 처음으로 소개됐다. 접종가능 연령은 만 2세부터 55세 이하다. 미국·캐나다 등에서는 대학 입학·군대 등 집단 생활을 시작할 때 수막구균 뇌수막염 접종을 권한다. 세균성 뇌수막염을 예방하려면 평소 생활습관을 점검한다. 수막구균은 기침·재채기로 나오는 타액 등을 통해 전파된다. 식기·컵·숟가락 등을 함께 사용하는 습관을 삼가고, 마스크 등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