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최고의 선망 직업 중 하나다. 고교에서 이과 상위권은 대부분 의과대학을 희망할 정도다. 하지만 청소년은 물론 학부모 대부분 의대를 졸업하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며, 어떤 가능성이 열려있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 아니, 큰 관심이 없다. 그저 돈 잘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직이라는 점만 고려한다. 그래서인지 의대 진학 후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의사 자격증을 갖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진로에 대해 알아봤다.
의대, 길고 고되다
의대를 나오면 꼭 환자 보는 의사만 하는 걸까. 아니다. 의학엔 크게 3가지 영역이 있다. 해부학·생리학 같은 기초의학, 성형외과·피부과 등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임상의학, 마지막으로 법의학·의료법윤리학 같은 사회학적 측면이 포함된 인문사회의학이다. 어떤 영역이든 공통점은 있다. 수련과정이 길고 고되다는 점이다.
김성완 서울대 의대 의공학과(석·박사 전공) 교수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차세대 우주왕복선을 만들던 과학자다. 과학자가 왜 의대 교수로 있는 걸까. 김 교수는 “내시경 카메라, 미세수술을 위한 로봇팔, 인공장기 등은 의학과 항공우주공학을 융합한 의공학 분야”라며 “의공학은 인체에 대한 이해와 공학적 기술을 두루 갖춘 융합형 전공”이라고 말했다. 국내에는 1970년대 후반부터 등장했다. 현재 서울 의대 의공학과에는 의대 출신 50명뿐 아니라 공대 출신 80명이 함께 연구하고 있다.
의대 졸업 후 전공할 수 있는 분야는 의공학과 외에 법의학도 있다. 미국 드라마 CSI를 떠올리면 된다. 유성호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국내에 드문 법의학자 중 하나다. 법의학은 인턴까지는 일반 임상을 하고 레지던트 과정에서 병리학을 전공한다. 국내에 법의학 교수는 15명, 법의학자는 43명 뿐이라 앞으로 수요가 늘어날 분야다. 유 교수는 “전문의 이후 국방과학연구소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들어가 부검이나 유전자검사 등의 작업을 한다”며 “사망률·자살률 같은 국가 기초 자료를 확립하는 데도 기여한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되는 길도 있다. 연대 전병율 교수가 대표적이다. 전 교수는 특채로 공직에 들어가 의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보건복지부 대변인을 역임한 후 2011년 질병관리본부장에 취임했다. 2013년 임기를 마치고 대학에 왔다. 전 교수는 “그 어려운 의대 공부를 하고는 왜 의사가 아닌 공무원을 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의사로의 소명도 있지만 예방의학자로의 소명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분야 공무원은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이 공무원 특채 시험에 응시하면 된다. 채용되면 의료 정책이나 질병관리 정책 등의 업무에 투입된다. 예를 들어 조류독감(AI) 등 전염병을 관리하고 건강보험제도나 장애인 복지, 학교 보건 등 국민 건강에 관련한 모든 부분을 의사의 시각을 더해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전 교수는 “의대 나왔으니 의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구태의연한 생각”이라며 “의학을 기반으로 사회 전반에 기여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할 뿐더러 수요도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임상의는 질병만 다루는 게 아니라 환자와 대면한다. 임상의 중 환자와의 직접적 접촉이 가장 적은 게 마취과다. 전윤석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수술장에서 환자 상태를 지켜보며 마취액을 조절한다”며 “자동차 운전하는 것처럼 수술 내내 핸들을 잡고 운행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레지던트 과정 이후 통증과와 마취과로 나뉘는데, 통증과는 환자를 직접 만나 통증 관련 시술이나 진료를 하고 마취과는 수술장에서 환자 상태에 맞춰 마취를 한다. 미국에선 최고의 인기 전공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윤석 교수는 “의학은 인류에 기여하는 학문”이라며 “임상의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가 고루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의대는 곧 임상의라는 편견을 깨고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전문 분야로 도전하라”고 덧붙였다.